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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바베큐 그릴 패키지 마트와 일반매장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한 패키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후딱, 반나절 만에 인쇄 데이터를 넘겼었다. 반투명 화이트 포장박스에 칼라스티커 부착방식 칼라스티커의 중앙 하단의 화이트 박스틑 바코드 스티커를 부착하기 위한 공간이고, 우측의 브라운 면은 없어야 하는 면인데 남아있는 데이터를 손볼 수 가 없어서 오류로 출력되어 보여지는 것. 아래의 반투면 화이트박스를 모라고 하는지 도통 생각이 않난다. ㅡ,.ㅡ 흔히들 부르는 명칭이 있다. 가스랜지나, 그 정도의 부피를 가진 제품들을 넣는 1회성이 아니라 케이스 개념의 포장물. 아... 미치겠네.... 하기사 이런 종류의 패키지 박스 디자인을 않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냥 패스~ 이런 종류의 포장물은 보통 1도 실크인쇄로 박스처리를 하고 칼..
2001년 마트용 패키지 티스토리로 포트폴리오 블로그로 새로 작성하면서보니 N** 블로그에 작성한 포스팅에 오류가 많다. 올초 프리랜서, 취업등의 이유로 급하게 남아있는 데이터로 작성하다 보니 아무래도 실수가 많았다. N**블로그에는 2011년 작업으로 기재했는데 아니다. 실재로는 2001년 제작한 패키지들이다. 당시 스위스 웽커칼과 라이터 등의 소품이 마트에 입점하게 된다. 이에 마트에 적용됐던 도난 방지 투명 케이스에 패키지 작업을 진행했다. 위의 라이터와 같은 칼선을 기준으로 작업된 작업물들로, 라이터 3종, 웨커칼 6종. 이 패키지들을 보노라면, 당시 마트를 담당하시던 영업부장님이 생각난다. 필자가 평생을 통해 보아온 영업맨중 가장 영업맨인 분이셨다. 영업이 전문직이다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게 만드신 분. 워낙 능력이 출..
디지털 습작 전에 N** 블로그에 본 습작을 포스팅했을때 'PC를 손에 익히기 위해 많은 습작을 연습했었다. 그중 남아있는 하나. ​ 주재는 "사람" ' 이렇게 포스팅 했는데, 다시 보고, 또보고, 하니 생각이 난다. 2000년 초반 근무하던 회사에서 필자가 디자인한 아이젠을 출시했다. 아이젠의 샘플목업도 두꺼운 종이를 겹붙인 후 도색해서 필자가 직접 제작했었다. 필자의 본 전공(공업디자인) 업무라 아주 재미있게 진행했다. 당시 필자가 종이로 제작한 목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던 기억이... ㅎ '난 원래 공디 출신이라고~~~~' 직접 디자인한 제품이다 보니, 패키지를 기존의 방식에서 벋어난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품을 촬영해서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려서 패키지를 만들어 보기로 결..
2001 잡지광고 당시 필자의 주요 업무중에 하나였던 광고제작. 현재 데이터가 남아있는 몇가지를 포스팅해 본다. 위의 광고들은 광고를 위한 촬영(광고촬영)을 베이스로 제작된 광고이다. 당시 국내 아웃도어업계에서 이런방식으로 제품을 광고하는 업체는 전무했던 시절.(의류말고 용품으로는 말이다.) 제품 이미지 촬영에 필요성을 설득하고, 설득하여 광고나 패키지에 적용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보시다시피 한페이지에 여러제품을 올리려하는 의식의 변화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별도로 지면을 잡으면 당연히 비용이 더 발생하니 이를 이유로 좋은 광고사진을 버려놓고 말았으니... 산만한 결과에 아쉬웠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어느정도 실행 했기에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쿽으로 작업한 데이터를 인디..
2001 가스 버너 패키지 / 당시 디자이너의 삶이란. 2000년부터 필자는 국내 아웃도어 회사인 "K"사에서 꽤 오랜 시간을 근무했다. 필자의 젋은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 부었을 만큼. 필자가 근무를 시작했던 2000년 부터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거의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급성장을 시작한다. 이에 필자가 근무하던 'K'사에서도 신상품이 급격히 쏟아지기 시작한다. 필자의 중요 업무중 하나가 출시제품의 패키지 작업. 위의 2종은 그중 2개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의 디자인/마케팅에 대한 인식은 그리 옳바른 것이 아니었다. 디자이너의 야근/특근은 당연시 생각하면서도 이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하지는 않았다. "너희들 일이 원래 그런거 아냐?" 디자이너의 진급은 업무능력으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먼저입사한 사람먼저, 나이든 사람먼저라는 희안한 방식의 진..
결혼정보회사 B&B / CIBI, 서류양식, 브로셔, 명함 20~30대의 필자는 소위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 2001년 필자의 음주운전 벌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맡아본 아르바이트가 본 건이다. 음주운전.... ㅡ,.ㅡ 수치가 너무 높아 당시에도 놀랄만한 벌금에 면허정지. 급전이 필요하다보니 별 수 있나... ㅋ 2001년 작업으로 벌써 18년전 필자의 첫 디자인알바의 기록이다. 로고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명 B&B는 Bride & Bridegroom, 신랑 신부다. - 아쉽게도 현재까지 존재하는 회사는 아니다. - 대표이니셜 B는 남과여로 형상화하기 좋은 알파벳으로 보여졌다. 서로 마주보는 두남녀가 모티브. 신랑의 대표색인 블랙은 그레이로 순화시키고, 신부를 상징하는 화이트를 베이스로 명함 디자인.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공들인 가입서류양..
무도 체육관 로고(심볼) 2001년. 필자는 아웃도어 회사의 담당 디자이너로 한참 바쁜삶을 살고 있었다. 필자의 담당업무는 패키지 제작, 설명서 제작, 월별 광고 제작, 각종 상품설명서 제작, 각종 홍보물(POP등의 업체 요청홍보물) 제작, 신상품 관련 진행자료, 등산용 스틱 디자인, 카탈로그 제작이 주업무였다. 2000년을 넘기고 2001년을 맞이하여 지난해를 돌아보니, 이러면 죽게구나 싶어 연간 업무 보고서를 상세히 작성하여, 이렇게는 더이상 운영할 수 없으니 소화 불가능한 업무는 외주처리를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외주처리 대신 신입 디자이너를 추가 고용하는 것으로 결론이났다. 디자인으로 밥숟가락 뜨던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신입 디자이너를 뽑으면 최소1년 이상은 더 힘들다. 제몫을 하기 전까지 가르치고, 신경쓰고...
GI기획 로고 케릭터 필자는 1998년, IMF가 한참일때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공업디자인.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경기가 위축되거나 좋지 않을때에는 디자인, 마케팅, 촬영등의 전문직은 정말이지 손가락 빨기 딱 좋은 직종이다. 졸업직후, 마포에 있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다, 전공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999년 용산에 있는 CD롬 타이틀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졸업 후 처음으로 시작한 디자인 업무에, 정말 초라한 월급을 받고도 필자는 설레였었다. 당시 필자의 업무는 CD롬 타이틀 전반에 적용되는 모든 디자인과 아이콘 개발, 캐릭터 개발이었다. CD롬 타이틀이란,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직전, 어떻게 보면 CD를 기반으로하는 홍보물, 네트워크 판매 등의 제작이었다. 매체가 다를 뿐 지금의 인터넷 업무와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