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가스 버너 패키지 / 당시 디자이너의 삶이란.
2000년부터 필자는 국내 아웃도어 회사인 "K"사에서 꽤 오랜 시간을 근무했다.
필자의 젋은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 부었을 만큼.
필자가 근무를 시작했던 2000년 부터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거의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급성장을 시작한다.
이에 필자가 근무하던 'K'사에서도 신상품이 급격히 쏟아지기 시작한다.
필자의 중요 업무중 하나가 출시제품의 패키지 작업.
위의 2종은 그중 2개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의 디자인/마케팅에 대한 인식은 그리 옳바른 것이 아니었다.
디자이너의 야근/특근은 당연시 생각하면서도 이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하지는 않았다.
"너희들 일이 원래 그런거 아냐?"
디자이너의 진급은 업무능력으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먼저입사한 사람먼저, 나이든 사람먼저라는 희안한 방식의 진급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당시 그런회사 많았다더라.)
이에 반발이라도 할라치면,
"야~ 다른 직원들도 다 열심히 일해, 경리부, 영업부 모두, 그리고 그부서사람들도 다 전문직이야. 디자인이 모라고..."
토시하나 않틀리고 당시 사장님께 이렇게 들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디자인 업무만 하기도 힘들었다.
"컨테이너 들어왔다 다 나와~"
"배송인력 딸린다. 내일부터 모두 배송이다~"
이부분은 아주 좋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디자인 기획사도 아니고 일반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타부서 업무를 지원해줄 수도 있는 것이지...만.... 하지만
일반 직원들이 하는 모든 업무를 같이하고 디자인 업무를 봐야했으며, 아무리 좋은 성과를 이루어 내도 진급과 급여는
항상 맨 마지막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싫었던건.....
"따르릉, 따르릉, 얘~ 전화 좀 받아라~~~"
낮에는 전화때문에 일하기 힘들었다.
디자인, 마케팅을 메인에 두지 않고 서브로 두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품을 만들면 팔리는데, 디자인은 좋은면 좋고, 나빠도 매출에 상관없다는 사고방식.
광고는 효율이 아니고 인맥에 의해, 관계에 따라 필요없는 돈을 지출하게 하고, 필요한 마케팅은 제의해도 무시~
그시절, 업체 출신 디자이너라면 아마 많은 공감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과 마케팅의 중요도와 인식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199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회사를 경영해온 대부분의 오너들의 인식은 여전히 그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는 전문대 출신이다.
필자의 최종학력으로는 일단 소위말하는 중소기업 이상의 출발이 사실상 힘들었다.
필자는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 이루어 내는 수밖에 없다.
눈총을 받아가며, 야근을 불사하고 2개의 시안을 만들어 이미지광고의 중요성을 매달 강조하고, 카탈로그라고 할 수 도 없는 나열식 접이 카탈로그를 기본 정보가 풍성한 스토리 책자 카탈로그로 바꾸기 위한 준비를 찬찬히 해 나갔으며,
제품이 출시될때마다 아무런 기준없이 그때그때 결재자의 성향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제작하던 패키지를 제품군, 칼라를 기초로 한 패키지 통합안을 적용시켰으며,
소비자는 결국 멋대가리없는 제품이 아닌 멋지고 성능좋은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는 전제하에,
개발 제품품평회에 참여 디자인성이 결여된 제품개발에 경종을 울려, 개발부 직원들의 경계대상 1호가 되기도 했다.
약 8년이 지나
필자는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빠른 직급을 이루어 냈으며, 같은 직급에선 가장 많은 급여를 받았다.
기획부와 디자인부를 총괄관리하는 관리자로서 7명의 직원을 데리고 있었고,
사무실 한켠에 내 부서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나의 직원들이 전화받느라 일못하는 사태를 방지했다.
무엇보다, 디자인, 마케팅 부분에서는 대부분 윗선의 터치없이 필자의 생각대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 가장 중요한 부분, 야근수당은 이루지 못했지만 전직원의 특근수당 적용을 통과시켰다.
그냥 이루어 낸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멀어졌으며, 공휴일은 유명무실했고, 잠은 부족했고, 잠들면 손에 마비가 와서 깨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다른 부서 직원들은 우리부서의 야근을 당연시 생각했고,
때돈을 받지도 않는데 왜들 저러나 하면 이상히 여겼다. (주로 칼퇴근 하는 직원들은 필자의 부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디자인의 전문성은 기대한 만큼 대접 받지 못했으며, 자신들의 개인 취향으로 디자이너를 괴롭히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했다.
디자인 관련 하도업체의 러브콜도 많았다.
가장 큰 매리트는 현재 급여보다 월등히 많은 급여.
그러나 무시했다.
왜?
난 목표가 있었으니까.
나의 부서를 완전히 다른 건물로, 별도로 분리하는 목표.
그때까진 끝난게 아니니까.
'K'사에서의 내 여정은 나의 목표와는 전혀다른 엉뚱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그 시절이
나에겐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나이 만 45세.
현재 필자와 같은 디자인을 아직도 업으로 하는 사람은 필자를 포함한 단 3명 뿐이다.
그중 1명은 교직에 있다.
실무와는 다른 길.
2019년.
예전보다는 나아진 인식.
자기살 까먹기식 운영으로 망가져버린 디자인 업계.
디자인의 수준과 퀄리티는 신경 않쓰는 클라이언트들.
형태와 색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기본수당으로 팔려다니며 디자이너라 불리우고 있다.
그림은 몰라도 프로그램만 사용할 수 있으면 '디자이너'라고 불리면서 말이다.
Work PC : Mac
Program : adobe Photoshop, adobe Illustrator, QuarkXPress